0 Comments

세라믹 이미지

도자기를 처음 만들던 날, 손끝으로 전해지던 흙의 온도가 아직도 선명하다. 생각보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 온도는 이상하게 마음을 진정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흙을 만질 때마다 시간을 잠시 멈춘 듯한 기분을 느낀다. 하루 종일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속도를 늦추게 만드는 순간이기도 하다.

처음엔 단순히 ‘예쁜 그릇’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흙을 빚다 보니, 형태보다 더 중요한 건 그릇이 담아낼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됐다. 어떤 그릇은 여름날 산책 후 마신 차가 담겼고, 어떤 컵은 밤새 고민하던 문장을 적던 책상 위에 있었다. 도자기는 결국 그 순간의 공기, 감정, 기억까지 함께 굳어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작품마다 계절과 장소의 분위기를 기록하듯 남긴다.

도자기를 만들며 가장 많이 바뀐 건 ‘관찰하는 방식’이다. 예전엔 그냥 지나쳤던 나뭇잎의 결이나 빛의 각도까지 눈에 들어온다. 어떤 날은 오후 햇살에 비친 나뭇결 무늬가 그릇 표면의 패턴 아이디어가 되고, 어떤 날은 바람에 흩날리는 흙먼지가 새로운 유약 실험의 계기가 된다. 디자인을 생각하기 위해 억지로 노력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들에 귀 기울이게 된 셈이다.

가끔은 누군가 내 작업실에 들어와서 선반에 놓인 그릇들을 바라볼 때, 조심스럽게 숨을 고르는 모습을 본다. 그때마다 ‘도자기라는 건 결국 사람을 멈춰 서게 만드는 물건이구나’ 싶다. 빠르게 움직이며 하루를 채우던 걸음을 살짝 늦추게 하고, 눈길을 붙잡아두며, 그 순간만큼은 시간을 다르게 흐르게 만든다. 나는 그 점이 가장 매력적이다.

물론 모든 과정이 낭만적인 건 아니다. 흙은 쉽게 갈라지고, 유약은 예측대로 굽히지 않으며, 가마에서 꺼낼 때까지 결과를 확신할 수 없다. 그 불확실함이 늘 긴장감을 주지만, 동시에 가장 짜릿한 순간이기도 하다. 실패작을 마주할 때는 아쉬움이 크지만, 그 덕분에 더 오래 흙을 만지고, 더 많이 불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앞으로도 나는 자연의 결을 담아내는 도자기를 만들고 싶다. 단순히 실용적인 물건을 넘어, 바라보는 순간 마음이 고요해지는 그릇. 흙과 불, 바람과 빛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며, 손끝에서 느꼈던 그 온도를 계속 기억하고 싶다.

– 김하윤 디자이너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